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땅을 파 기름을 얻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잊을만하면 뉴스의 단골 소재로 나오는 송유관에 구멍을 뚫어 기름을 훔치는 도유범들이 그 주인공인데 매번 반복되는 송유관 도유범들을 잘 잡아내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단순하게 보낸 기름의 양과 받은 기름의 양을 비교하면 쉽게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적게는 수만, 많게는 수백만 리터를 훔쳐간 뒤에야 잡는 것을 보니 생각보다 검거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고속도로 아래에 있는 송유관
우리나라의 땅 위에 고속도로가 있다면 그 아래에는 송유관이 묻혀있다. 송유관은 주요 고속도로에 나란히 매설되어 있으며 바다 근처에 있는 정유시설부터 우리나라 구석구석 뻗어 그 길이는 무려 1200km에 달한다. 물론 기름을 운송하는 방법에 송유관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연간 1억 9000만 배럴이 송유관을 통해 이동하며 이는 전체 수송량의 60% 정도를 차지한다.
송유관이 매설된 위치가 국가 기밀이라 들었지만 인터넷에 검색하면 송유관이 어디에 매설되어 있는지 바로 알 수 있다. 물론 기름을 훔쳐가는 도유범들도 알고 있을 것이고 이를 활용해 주변의 건물이나 땅을 매입해 범죄를 저지른다. 관련 기사를 검색해보면 이러한 도유 범죄가 자주 발생하고 웹툰 '오일머니'나 영화 '파이프라인'의 소재로도 쓰일 만큼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는 문제임에도 범행을 근절시키는 것은 힘들어보인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기껏해야 수십 억 원어치의 기름을 퍼내고 나면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을 사는 것이 일반적이나 외국의 경우 도유범죄가 꽤나 심각한 상황이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멕시코는 2018년 기준 하루 평균 약 6만 배럴(약 천만 리터)이 도난을 당했다고 한다.
효율적인 운송수단 송유관
도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송유관은 굉장히 효율적이고 친환경적인 운송수단이다. 현대 사회의 많은 기계장치들은 석유를 사용해 구동되나 석유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석유가 전달되어야만 한다. 석유를 사용하게 하기 위해 석유로 구동이 되는 유조차로 배달을 간다는 것은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배달을 가는 그 순간에도 석유를 사용하니 말이다. 만약 송유관이 없었다면 우리나라 기준 하루 평균 약 10,000대 이상의 유조차가 추가로 운행이 되어야만 했다고 한다.
그런데 송유관 속의 기름들은 어떤 힘으로 움직이는 걸까? 기름을 보내는 시설에 직접 가보면 알겠지만 거대한 펌프가 높은 압력으로 기름을 쏘아 그 힘으로 움직이게 하는데 쉽게 거대한 수도꼭지에 호스를 연결한 모습을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을 비교적 짧은 호스를 사용했을 땐 잘 나오지만 긴 호스를 사용하면 물줄기가 약해지거나 심하면 아예 나오지 않기도 하던데 왜 그럴까? 이는 물이 호스를 지나며 여러 가지 저항을 맞게 되어 생기는 현상으로 송유관 내의 유동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송유관 내의 기름의 유동
석유나 물과 같은 유체는 점성(彈性, Viscosity)이라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는 '끈적끈적한 정도'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송유관의 표면과 기름이 접촉하며 저항을 유발한다. 특히 관의 표면과 가까울수록 더 큰 저항을 받아 속도가 느려지며 이러한 저항이 모여 기름이 나아가는 힘이었던 압력을 낮추게 된다.
물론 점성만이 압력을 낮추지 않고 송유관의 고도가 높아진다거나 관의 형상이 변화할 때에도 압력강하가 발생한다. 그러나 송유관의 관의 크기는 대부분 일정하고 고도 변화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멀리 이동할수록 압력이 낮아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렇게 점차 압력이 낮아지다 보면 어느 순간 이동을 하지 못하게 되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일정 거리마다 압력을 다시 높여주는 부스터 펌프를 설치한다. 물론 이동을 하지 못할 정도로 압력이 낮아지기 훨씬 이전에 다시 압력을 높여주기 때문에 송유관 내부의 압력은 굉장히 높게 유지가 되고 있다.
만약 도유범이 고압의 송유관에 구멍을 내게 된다면 순간적으로 엄청난 양의 석유가 뿜어져 나올 것이며 혹시 스파크라도 발생한다면 그대로 대형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송유관에 구멍을 뚫다 발생한 화재로 인한 사망사건도 있었고 2019년 멕시코에서는 도유를 위한 구멍 때문에 송유관이 폭발해 100여 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뚫는 데에 성공했다면?
모든 위험을 무릎서고 성공적으로 구멍을 낸 후 기름을 뽑아내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이를 정유사나 경찰이 확인할 방법은 없을까? 연속 방정식(continuity equation)에 의해 송유관 안으로 들어온 기름의 양과 나간 기름의 양은 동일해야 하니 이를 비교해보면 쉽게 알아챌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송유관 내에 흐르는 정확한 기름의 양을 계측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워 도유를 당하고 있다는것을 알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유량계의 성능이 향상되고 있다지만 아직도 정확하지 않다. 다만 오랜 기간 동안동안 얻은 경험을 통해 간접적인 방법으로 유량을 계산해 낼 수는 있다. 이를 위한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압력을 사용하는 것인데 이 압력을 활용한다면 석유가 도난당하고 있는 위치도 유추해 낼 수 있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특정 위치에서 어느 정도 압력이 나와야 한다는 것은 계산이 되기 때문에 압력계를 지난 후 이상 압력강하 현상을 찾게 된다면 그 주변 지역을 탐문해 도유를 탐지할 수 있다. 하지만 압력강하를 확인할 수 없을 만큼 아주 조금씩만 훔쳐간다면 아쉽게도 찾기가 쉽지는 않다고 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높아지는 계측기의 정확도와 다양한 센서들의 발달로 이제는 대부분의 도유 범죄는 금방 찾아낸다고 한다.
아쉽지만 이제는 기름을 훔쳐갔다는 기사를 만나보기가 힘들 것 같다.
송유관에서 석유훔치기 - 뚫는 그곳이 바로 유전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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